• 2023. 5. 17.

    by. lyc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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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표는 한나라 황실의 피를 물려받았다. 그는 외모가 잘나고 어려서부터 학문과 문학을 좋아해 부지런히 익혔다.

       한나라의 영제가 죽자 유표는 형주지사에 임명되었다. 당시 형주 지역에서는 많은 호족(지방의 토착 세력)들이 법령(법과 명령)을 무시하며 지냈는데 나라에서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유표는 홀로 형주로 와서 괴량, 채모를 신하로 삼아 형주를 다스리기 시작했다.

       유표는 반역자의 우두머리를 단번에 없애고 그들의 군사를 재편성하여 양양을 뺀 형주 지역을 모두 평정했다. 이어 유표는 괴월과 방계를 파견해 양양을 점거한 도적의 우두머리들을 항복시켜 형주를 완전히 토벌했다. 그 후 원술과 손견 연합군을 물리치고 장제의 병력을 흡수했으며 남쪽으로 땅을 넓혔다. 그리하여 10만이 넘는 병사를 갖춘 강력한 군벌 세력이 되었다.

       형주를 손안에 넣은 유표는 수비 단계에 들어갔다. 통치 구역 안에 학교를 짓고 배움이 높은 학자들을 불러들였으며 토지 경영에 힘을 쏟았다. 이처럼 성실하게 관리한 덕분에 형주는 평온한 지역이 되었다. 많은 인재들은 형주로 와서 정착하여 난리를 피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유표가 진취적인 마음을 잃어 많은 인재들을 내버려 두었다는 점이다.

       그 사이 유비가 그에게 와서, 조조가 요동을 정벌하는 사이 허창을 공격하여 황제에게 바치라고 권했다. 그러나 유표는 유비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좋은 기회를 놓쳤다.

       당시 사람들은 유표를 말만 잘 하는 사람 풍자하면서, ‘무엇이 좋은지 알면서도 쓰지 않고, 무엇이 나쁜지 알면서도 배척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다른 기록들을 보면 유표는 의심은 많았지만 형주 지역은 잘 통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다른 기록에는 유표가 형주를 20년 동안 통치하면서도 재산을 챙기지 않아 청렴함을 엿볼 수 있다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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