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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는 유비가 원소에게 있다는 것을 안 뒤에, 조조에게서 받은 한수정후의 인장과 금은보화를 두고 두 형수를 모시고 유비를 찾아 떠난다. 관우가 이렇게 유비를 찾아가는 여정을 <삼국지연의>는 ‘다섯 관문을 지나며 여섯 장수를 벤’ 여정으로 길게 묘사한다. 관우 일행은 허창을 떠나 동령관, 낙양, 사수관, 형양, 활주를 거쳐 황하를 건넌다.
그런데 지도로 보면 관우가 건넌 황하 나루터는 허창에서 정확히 북쪽에 있으며 그 거리는 160키로미터가 채 되지 않는다. 또 허탕과 황하 나루터 사이에는 큰 산이나 험한 지형도 없다. 그런데 관우는 쉬운 길을 내버려 두고 빙빙 돌아간 셈이 된다. 게다가 활주는 수나라 때에야 생긴 지명으로 삼국시대에는 ‘동군’이라고 불렸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다섯 관문을 지나면서 여섯 장수를 벤’ 일은 작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이야기다.
관우가 조조를 떠나 유비에게로 돌아간 일은 <삼국지>나 <자치통감>에도 나와 있다. 다만 그 과정이 <삼국지연의>에서처럼 복잡하지 않을 뿐이다.
<삼국지> ‘수수’의 ‘관우 전’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관우가 안 양을 죽이자 조조는 그가 반드시 떠날 것을 알고 더 큰 상을 내렸다. 관우는 모든 하사품을 돌려주고 작별했다. 조조의 부하들이 뒤쫓으려 하자 조조가 “각자 주인이 따로 있는 법이니 뒤쫓지 말라” 하였다’
<삼국지> ‘위서’의 ‘무제기’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조 공이 완도로 돌아가고, 원소는 앵무를 지키고 있었다. 관우는 옛 주인 유비에게 돌아갔다.’
<삼국지> ‘수수’의 ‘선주 전’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조조와 원소는 관동에서 대치하고 있었고, 아남에서 황건적 유 벽이 조조를 배신하고 원소와 연합했다. 선주(유비)는 유 벽 등과 합류했고, 관우가 주인을 찾아 돌아갔다.’
그 기록들을 볼 때, 조조는 백마와 여진의 두 전투에서 이긴 뒤 완도로 돌아갔고, 원소는 앵무에 주둔해 있었으니 서로 몇십 킬로미터 거리를 두고 대치해 있었다. 관우는 이때 조조를 떠나 앵무로 가서 유비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다섯 관문을 지나며 여섯 장수를 죽인’ 이야기는 역사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하며 생겨난 이야기다. 작가 나관중은 이것을 특별히 고치지 않아 관우가 이처럼 이상한 경로로 거쳐 유비를 찾아가게 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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