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 5. 1.

    by. lyc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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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비의 초기 모사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람은 손건이다. <삼국지연의>에서 도겸이 임종 직전 유비에게 서주를 넘겨주려 할 때, 유비는 자신의 부족함을 내세워 거절한다. 그러자 도겸은 보좌관으로 손건을 추천했고 유비도 어쩔 수 없이 서주를 맡는다.

       그러나 <삼국지> 기록을 보면 손건은 199년 유비가 서주목을 맡고 있을 때 관리로 임용한 사람으로 도겸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 동한 시대에 각 주의 목사를 맡은 사람은 밑에 두 명의 보좌관을 둘 수 있었는데, 치중종사와 별가종사였다. 치중종사는 행정을 별가종사는 외교를 담당했는데, 손건이 바로 서주의 별가종사였다. 따라서 손건은 유비 밑에서 외교 사절로 가장 많이 파견되었다.

       모사는 보통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좋은 계책을 잘 내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외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손건은 후자에 속했다. 손건의 외교 능력은 비범하다는 단어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원술이 유비를 공격했을 때 손건은 편지 한 통과 세 치 혀를 이용해 이미 유비와 사이가 틀어졌던 여포가 나서서 유비를 돕게 만들었다.

       유비는 어린 시절에 함께 공부한 공손찬이 원소를 공격할 때 도운 적이 있고, 조조와 함께 원소의 동생인 원술을 공격하는 등, 원소와 등진 일이 많았다. 그런데 나중에 유비가 조조를 배반하고 쫓길 때, 손건은 대학자 정현의 친필 편지를 들고 원소에게 가서 도움을 청했다. 원소는 우선 정현의 체면을 생각하고 또 손건의 말에 감동해 유비를 돕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훗날의 관도전투가 시작되었다.

       유비는 나중에 원소의 옆에 더 있을 수 없게 되자 형제들을 데리고 여남으로 간다. 이때도 손건은 미축과 함께 형주의 유표에게로 가서 놀라운 외교 능력을 발휘했다. 유표는 황실 종친으로서 유비를 동생으로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대대적인 환영 의식을 열어주기까지 했다.

       유표가 죽고 조조가 유비를 공격하자 손건은 다시 외교 사절로 유표의 큰아들 유기에게 가서 그의 도움을 끌어냈다. 유비와 손권의 여동생 사이의 결혼을 성사시킨 일, 장로의 부하인 양송을 뇌물로 매수한 일, 마초를 설득해 유비에게 귀순하게 한 일 등이 모두 손건의 공로였다.

       손건은 일생 동안 외교 사절 노릇을 충실히 했다. 그러나 전략을 세우는 데는 약해서 좋은 계책을 내놓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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