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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은 서한 원제 때 사예교위라는 벼슬을 지낸 제갈풍의 후손이다. 제갈풍은 공정한 법 처리와 강직하고 아첨하지 않는 행동으로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기를 받아 벼슬이 내려가는 일을 겪었다. 그는 그 뒤에도 정직함을 잃지 않아 관원이 불법 행위를 하면 글을 올려 고발했다. 어리석은 원제는 오히려 제갈풍이 좋은 사람을 모함한다며 관직을 박탈하여 평민으로 만들었다.
제갈 씨는 낭야군에서 명망이 높은 집안으로 대대로 벼슬을 했다. 제갈량의 아버지 제갈규는 태산군 군승을 지냈고, 작은아버지 제갈현은 나중에 예장태수를 지냈다.
제갈량의 아버지는 딸 둘과 아들 셋을 두었다. 아들 이름은 첫째가 근, 둘째가 량, 셋째가 균이었다. 제갈량의 어머니 장씨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는 새 아내를 얻었다. 그런데 제갈량이 여덟 살 때 아버지도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작은아버지 제갈현이 이들 형제자매를 맡는다.
조조와 도겸이 싸울 때 제갈 집안은 난리를 피해 서주를 떠났다. 당시 강동 손책과 회남 원술의 근거지가 비교적 평온했으므로 제갈량의 형 근은 계모와 함께 강동으로 가서 손권의 빈객이 되었다. 제갈현은 량, 균 그리고 두 명의 조카딸과 함께 회남으로 갔다. 원술이 제갈현을 예장태수로 임명했으나 중앙 조정에서는 주호를 임명하여, 어쩔 수 없이 오래 전부터 알던 유표에게 의탁했다.
유표와 제갈현은 오랜 벗이었지만, 유표는 남양을 쟁탈하기 위해 여러 번 원술과 격전을 치른 적이 있기에 제갈현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오래지 않아 제갈현은 세상을 떠났다. 그즈음 제갈량의 두 누나는 모두 시집을 갔다.
제갈량과 동생 균은 의지할 곳을 잃고 양양을 떠나 남쪽의 와룡강에 정착했다. 이들은 농사를 짓고 자신을 갈고닦으며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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