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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책을 보면 동한 말기 각 제후들의 병력을 언급할 때 ‘백만’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사실상 이 숫자는 정확하지 않다. 동한 말기의 인구를 고려하면 많이 부풀려진 숫자다.
<진서(晉書)>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환제 영수 3년(157년), 동한의 인구는 5천 6백만이었다.” 그러나 <후한서>서에는 “동한 영흥 원년(153년)에 메뚜기 떼의 재해를 입은 데다 황하까지 넘쳐 수십만 호의 사람들이 기아에 시달렸고 사람을 잡아먹는 참극까지 벌어졌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전란이 이어졌으므로 인구는 더욱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진서>에 기록된 것처럼 인구가 많았을 것 같지는 않다. <진서>의 수치는 관리들이 정책적으로 보고한 부실한 통계임을 짐작할 수 있다.
각종 자료를 종합하여 살펴보았을 때, 동한 말기의 인구는 5백만 명에서 6백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전체 인구가 이 정도라면 ‘백만’ 군사를 양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국의 군사를 모두 더해 80만 명 정도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각 제후들의 실제 병력은 어는 정도였을까?
역사서의 기록을 보면 유표의 병력이 ‘갑옷 병사 10만’이라고 되어 있고, 마등과 한수가 약 10여만 명을 꾸렸다고 한다. 앞에서 살펴본 전체 인구를 생각하면 대략 그 정도 병력은 갖추었을 것으로 보인다. 유장의 파촉군과 장로의 한중군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지만 합쳐서 10만 정도 되었을 것이다.
“손책이 죽었을 때 동오의 군대는 10만에 이르렀다.”라는 구절로 보아 동오 역시 약 10만 병력을 갖추었던 것 같다. 유비의 병력은 초기의 몇백 명에서 점점 늘어 나중에는 수만 명에 이르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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