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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병’은 조조의 직계 군대로 용맹하고 전투력이 좋기로 유명하다. 조조는 청주병을 기틀로 삼아 천하를 얻을 수 있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청주병의 기원을 말하면서, 조조가 청주의 황건적을 물리치려고 병사들을 모집했다가 정예병만 추린 것이 청주병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때 작가는 한 사람의 공로를 슬쩍 빠뜨렸다. 바로 조조를 구해 주었다가 조조가 여백사 일가족을 죽이는 모습을 보고 조조를 떠난 진궁이다.
<세설신어>의 기록에 따르면 진궁은 조조와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였다고 한다. 언제 만났는지와는 관계없이 진궁은 조조에게 중요한 정치적 도움을 준 사람임이 틀림없다.
당시 산동성에서 황건적이 날뛰자 연주목 유대는 포신의 건의를 듣지 않고 무리하게 전투를 벌이다가 크게 패하고 목숨마다 잃는다. 유대가 죽자 진궁은 연주성을 맡고, 그리로 조조를 불러들인다. 그 후 연주성은 조조의 근거지가 되어 조조가 세력을 뻗치는 데 큰 구실을 한다. 진궁은 자신의 인맥과 명성을 이용해 조조의 정치적 받침대 역할을 톡톡히 했으며, 청주병의 전신인 황건적 토벌군을 모집하는 데도 큰 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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