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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포를 막다른 길로 몰아넣은 아내, 엄 씨
여포가 조조, 유비와 싸우다가 퇴로가 끊겨 하비성으로 몰렸을 때의 일이다. 진궁이 계책을 냈다. 여포가 성 밖에 나가 군영을 설치하고 진궁은 성안에 남아 안팎에서 조조와 싸우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시간은 끌면 조조 군은 군량이 떨어져 퇴각할 것이라는 계책이었다. 여포도 이 계책에 동의했는데, 아내 엄 씨가 말렸다. “아내와 자식들을 버리고 성 밖으로 나가 싸우다니, 당신이 없는 동안 성안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우리는 어쩌라고요?”
그래서 여포는 응하지 못했다. 진궁은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계책을 내놓았다. 여포가 조조 군의 군량 보급로를 끊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포의 아내 엄 씨가 울면서 또 말렸다. 진궁과 고순에게 성을 맡기고 나가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여포는 기회를 놓쳐 조조에게 패했고, 목숨까지 잃었다.
<영웅기>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여포는 조조의 군량 보급로를 끊기 위해 출병하려고(진궁이 낸 계책이 아니었다) 진궁과 고순에게 성을 맡긴다. 엄 씨는 이를 말리는데 평소 진궁과 고순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포가 성을 떠난 뒤 두 사람 사이에서 알력이 생겨 조조에게 공격의 빌미를 줄까 걱정한다.
<위씨춘추>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진궁이 성 안팎에서 공격하는 계책을 내고 여포에게 성 밖으로 나갈 것을 권한다. 이를 본 엄 씨는 예전에 조조가 서주를 치러 간 사이에 연주 성에 남아 있던 진궁이 갑작스레 조조를 배신하고 여포를 불러들여 연주 성을 바친 일이 떠올랐다. 엄 씨는 진궁이 다른 꿍꿍이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여 여포를 말린다.
“진궁은 믿을 수 없는 사람이에요. 조조가 그렇게 잘해주었는데도 조조를 배신했잖아요. 지금 당신이 진궁에게 아무리 잘해준다고 해도 당시의 조조에 미치지 못할 텐데, 그가 충성을 다할 리가 없어요. 당신이 성을 나간 뒤에 진궁이 배신하면 어떻게 해요?” 여포가 생각하기에도 그럴듯한 말이라 결국 진궁의 계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엄 씨는 정세를 읽는 판단력과 넓은 시야는 없었지만 어는 정도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남편을 말렸다. 여포 역시 평생을 전장에서 보낸 장수인데 아내의 몇 마디 말만 듣고 결정을 바꾸었을 리 없다.
2. 허리띠 속에 숨긴 비밀 조서의 의문점
허전 사냥터 사건 이후 헌제는 조조가 조정을 농단하는 것에 불만을 품는다. 그래서 조조를 없애라는 조서를 써서 의대 衣帶(옷과 띠) 속에 숨긴 다음 장인인 동승에게 전한다. 이 일과 관련하여 역사서의 기록은 조금 다르다. <후한서>와 <삼국지>에는 동승이 황제의 비밀 조서를 받고 조조를 죽이려 했다고 씌어 있고, 다른 책에는 비밀 조서에 관한 이야기는 없고 단지 동승이 모반하려 했다고만 씌어 있다. <자치통감>의 기록이 좀 더 객관적인데, “거기장군 동승이 황제의 밀조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유비 등과 함께 조조를 죽일 계획을 세웠다.”라고 되어 있다.
여러 역사 기록을 살펴볼 때, ‘의대 속에 숨긴 비밀 조서’에 대한 <삼국지연의>의 내용을 무조건 믿을 수 없을 듯하다. 특히 <자치통감>에서 ‘동승이 비밀 조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고 표현한 것을 보면, 비밀 조서의 존재는 더욱 의심스럽다.
조조가 헌제를 보좌하기 전에 동탁, 이각과 곽사 등이 조정을 어지럽히면서 백성들의 삶이 매우 어려워졌다. 조조가 정권을 잡으면서 조정이 안정되고 백성의 삶도 점차 나아지고 있었다, 헌제는 오랜 시간 고난을 겼다가 이제 겨우 안전을 찾아가는 참인데 굳이 조조를 죽이려 할 이유가 있었을까? 게다가 역사서들의 기록을 보면, 헌제는 머리가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당시의 정세로 볼 때, 조조를 죽인다고 해도 두 번째, 세 번째 동탁, 이각과 곽사 같은 자들이 나타날 것이 뻔했다. 조조를 죽이는 것은 헌제 자신에게나 나라에나 불이익만 가져오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비밀 조서는 누가 꾸민 일일까? 답은 동승이다.
역사에 기록된 동승은 <삼국지연의>에서처럼 마음으로 나라를 위하는 정직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헌제가 낙양에서 도망칠 때 어가를 호위하면서, 복 황후가 가진 비단을 탐낸 나머지 부하를 시켜 훔치게 했는데, 그러면서 황후의 곁을 지키는 시녀를 죽이기까지 했다. 이런 사람이 황제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구할 수 있을까?
또한, 동승은 조조가 헌제의 어가를 맞이하러 온다는 말을 듣고 자신의 세력이 약해질까 두려워 한복과 함께 조조의 길을 막기도 했다. 그러나 한복이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며 교만해지자, 조조가 낙양에 입성하는 것을 받아들였다. 한복의 기세를 꺾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동승의 성격과 행동으로 미루어 볼 때, ‘허리띠 비밀 조서’는 동승이 꾸며낸 이야기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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