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 10. 3.

    by. lyc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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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승은 황제의 장인인가, 처남인가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를 청나라 강희제 때 모종강이 개작한 <삼국지연의>는 동승을 동 귀비의 오빠, 헌제의 처남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후한서>에는 동승의 딸이 귀인이 되었다는데, 조조가 동승을 죽이고 귀인 역시 죽이려 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여기서 동승은 귀인의 아버지이니 황제의 장인이 된다.

       동한 황실의 작위에는 황후와 귀인이 있고 그 아래로 미인, 궁녀, 채녀 세 등급이 있었지만 귀비는 나중에 송나라 때에야 등장한다. 그런데 <삼국지연의>에서는 귀비라는 품계가 역사를 거슬러 등장하여, 동 귀인이 동 귀비가 되어 버렸다.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에서는 동승을 동 귀비의 아버지라고 했는데, 모종강 부자가 <삼국지연의>를 고쳐 쓰면서 동 귀비는 동승의 여동생이라는 말을 집어넣은 뒤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모종강 부자가 여동생으로 고쳐 쓴 이유는 아마도 <삼국지연의> 원본의 국구 國舅라는 단어 때문일 것이다. ‘국구는 후대에는 황비의 남자 형제를 뜻하는 말로 썼다. 그런데 동한 당시에는 장인이라는 단어가 없었기 때문에, 영제의 어머니 동 태후의 조카이자 헌제의 장인인 동승을 국구라고 불렀던 것이다.

     

      2. 원 씨 형제와 황제 자리

     

       원소는 연합군의 맹주를 맡은 뒤 야심이 날로 커졌다. 그는 헌제가 어리고 적자가 아니며 역적 동탁이 옹립했다는 핑계를 들어 새 황제를 세우려 했다. 새 황제를 세운다면 자신이 새로운 조저의 우두머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새로운 황제로 자신과 사이가 좋은 유우를 점찍었다. 유우는 황실의 종친인데다 인망이 높아 어린 헌제보다 천하를 통치하기에 적합해 보였다.

       원소는 배다른 동생 원술에게 편지를 써서 유우를 황제로 옹립하는 일에 동참하라고 권한다. 그러나 원술의 야심은 원소보다 컸다. 한나라가 쇠약해지고 황제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스스로 황제가 되려는 마음을 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기가 무르익지 않았다고 생각한 원술은 짐짓 충성스러운 척 답장을 보냈다.

       “헌제는 뛰어난 분으로 성군의 자질이 있습니다. 지금 동탁이 조정을 어지럽히고 있지만 이는 잠깐의 위기일 뿐, 오래지 않아 역적을 제거하고 다시 한나라를 부흥시킬 것입니다. 충신이라면 동탁을 없애려는 생각을 해야지, 다른 마음을 먹어서는 안됩니다.”

       한마디로 원소가 새 황제를 옹립하려는 것은 반역이고, 원술 자신이 진정한 충신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유우마저 황제 자리에 앉지 않겠다며 원소의 제안을 거절했다 유우는 현명했으므로 자신이 황제가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았다. 동탁과 정면 대립을 피할 수 없고, 그러다 싸움이 나 여러 제후들이 공격해 오면 틀림없이 편안히 죽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원소 혼자 새 황제 옹립에 열을 올렸을 뿐, 한복 외에는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 일은 이렇게 대충 끝이 났다.

    훗날 원술은 옥새를 손에 넣은 뒤 황제가 될 시기가 왔다고 여겨 스스로 황제라 칭하고 연호까지 정했다. 그러다 그를 황제로 인정하지 않는 여러 제후들에게 공격을 받고 다 죽게 되자 황제의 칭호와 옥새를 형 원소에게 넘기려고 했다. 같은 원 씨가 황제가 되는 것이 생판 남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그러나 원소는 손에 다 넣은 옥새을 중간에 조조에게 빼앗기고 만다. 이때부터 조조와 원소 사이에 금이 간다. 길고 혼란스러운 전재의 시작이었다.

     

      3. 원술이 한 좋은 일

     

       정사를 살펴보든 <삼국지연의>를 읽어 보든, 원술은 천성이 오만방자하고 방탕하여 백성들의 생사에는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다. 원술은 제멋대로 황제 자리에 오르더니 마침내 제후들의 공격을 받아 목숨을 잃었다.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은 또 있다. 백성을 돌보지 않아 민심을 얻지 못한 것이었다. 결국, 그는 피를 토하면서 처참하게 죽었다.

       그러나 원술이 좋은 일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후한서>의 기록을 보면, 건아 2(127), 원술은 황위에 오른 뒤에 조조의 공격을 받아 크게 패한다. 당시 엄청난 흉년이 휩쓸어 많은 백성들이 굶어 죽어 갔다. 원술의 부사 서중은 이 광경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군량 10만 섬을 꺼내 백성을 구휼하는 데 썼다. 원술이 이 일을 알고 서중에게 물었다.

       “네 마음대로 군량을 빼내면 죽을죄라는 것을 몰랐느냐?”

       “당연히 압니다. 하지만 저 한 사람이 죽어서 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기쁘겠습니다.”

       서중의 대답을 들은 원술은 화를 가라앉히며 농담을 섞어 말했다.

       “이 일로 네가 명성을 얻겠구나. 설마 너 혼자 민심을 얻으려는 속셈은 아니겠지?”

       그러고는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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