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 5. 31.

    by. lycian

    반응형

       마초의 아버지 마등은 서북 지역에서 일어난 독립 세력이었다. 마등은 군사를 일으켜 장안을 공격했으나 폐하여, 결국 서량으로 도망친다. 사예교위에 임명된 종요는 지방의 어지러운 상황을 걱정하여 마등과 한수에게 편지를 보내 그들에게 무엇이 이익이 되는지 일러 주었다. 편지를 받은 마등은 종요의 생각이 옳다고 여겨 마초를 종요의 밑에 있게 했다.

     

       조조는 승상이 된 뒤 여러 차례 마초를 궐 안으로 불러들이고자 했으나 마초는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조조는 마 등에게 우위라는 관직을 내리고, 마초의 동생 마류와 말 편자에게도 관직을 내려 100명이 넘는 마 등 일가가 모여 살게 했다. 그러나 마초는 혼자 양주에 남아 아버지가 통치하던 곳을 다스렸다.

     

       그 후 조조는 마초를 허창으로 불러들였으나 번번이 거절당한다. 서기 211년 조조가 병사들을 훈련시킨다는 소식을 들은 마초와 한수는 조조가 서량을 정복하려 한다고 생각하여 먼저 장안을 공격했다. 그때 조조의 부하들은 마초가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마초의 아버지 마등을 비롯한 가족들이 그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초의 공격은 성공하여 결국 장안성은 서량군의 손에 넘어갔다.

     

       이 소식을 들은 조조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마초를 물리치러 온다. 결과는 조조의 대승이었고 조조는 단번에 서량을 평정한다. 크게 패한 마초는 사촌동생 마대, 부하 방덕와 함께 한중의 장로에게 몸을 의탁하고, 조조는 마등 일가를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삼국지연의>에는 마등이 문하시랑 황규와 음모를 꾸며 조조를 죽이려 했으나 그 전에 발각되어 죽음을 당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마초는 이에 원한을 품고 복수의 길을 간다. 작가가 조조의 포악한 면을 부각하려고 일부러 바꿔 놓은 것이다. 이 때문에 한 사건의 본질이 완전히 달라졌다. 역사를 들여다보면 마등 일가를 죽음으로 내몬 사람은 사실 마초였다.

     

       - 외로운 마초

     

       유비의 사람이 되기로 한 마초는 이런저런 이유로 난관에 빠진다. 무사가 전쟁터에 나가지 못하는 것만큼 비참한 일은 없었으며, 세 차례에 걸쳐 집안사람들이 모두 세상을 떠났으니 이처럼 처량한 신세도 없었다. 마초는 할 일 없고 가족마저 없는 두 가지 고통에 짓눌렸다. 중국 음력 설날에 유일한 혈육인 사촌동생 마대가 마초를 찾아왔다. 마초는 구슬피 울며 말했다. “백 명이 넘는 집안 식구들이 다 세상을 떠났는데 우리 둘이 남아서 무엇을 축하할 수 있겠나!”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