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 3. 17.

    by. lyc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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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욱은 명문가 출신으로 163년에 태어났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작은아버지까지 모두 병상이 높았고, 순욱 역시 어려서부터 왕을 보좌할 재목이라고 불렸다. 조조는 순욱과 처음 만났을 때 그의 식견에 감탄해 나의 장자방이다.”라고 말했다. ‘장자방은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운 공신 장량으로, ‘이 정식 이름이고 자방은 자()(‘는 본이름 외에 불렀던 이름이다. 예전에는 이름을 소중히 여겨 함부로 부르지 않았으며, 그래서 관직 다음에 자를 붙여 부르곤 했다). 조조는 이처럼 순욱에게 홀딱 반한 것이다.

       조조의 수하 중에는 뛰어난 책략가가 수없이 많았지만, 순욱은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조조를 섬겼다. 조조의 정치 인생에서 중대한 고비가 세 차례 있었다. 첫 번째는 서주를 공격할 것인지 여포를 공격할 것인지 결정할 때였다. 두 번째는 헌제를 이각과 곽사에게서 구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할 때였고, 세 번째는 관도 전투 때 철군할 것인지 그대로 버틸 것인지 결정할 때였다. 이 세 번의 고비마다 순욱은 조조가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건의했다. 또한, 순욱은 자신도 재능이 뛰어나지만 훌륭한 인재를 천거하는 데도 뛰어났다. 곽가, 희지재 등이 모두 순욱이 천거한 인재였다.

       순욱은 조조를 위해 성심으로 일하긴 했지만, 뼛속까지 한나라 신하였다. 그가 조조에게 황제를 구하러 가라고 권할 때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하라고 하지 않고 천자를 모시고 제후를 호령하라고 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순욱의 뜻은 한나라를 부흥하는 데 있었지 한나라를 다른 왕조로 바꾸는 데 있지는 않았다. 순욱은 212년에 49세의 나이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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